목요일, 11월 1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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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사 A-501 라디오, 역할의 대물림

글쓴이 : SOONDORI

1955년 소개된 산요 SF-78이 1959년 금성사 최초 라디오 A-501의 모태가 되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있다. 독일 기술자 헨케(Henke) 그리고 미군 PX 수리사업자 김해수씨(일본 공고 졸업, 금성사 이후로도 우리나라 전자공업분야 발전에 다양한 역할을 담당)가 주도했다는 이 ‘일본제품의 국산화 개발’ 작업은 당시 황무지나 다름없던 산업환경을 생각할 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금성사 최초의 라디오 A-501과 최초의 흑백TV VD-191, 출처 : http://social.lge.co.kr/product/116_/)

치약을 만들던 ‘락희화학’이 전자분야에 뛰어든 것은 꽤나 어색한 일이다. 구인회사장의 갑작스런 갈아타기 결심은 결과적으로 대단히 과감하고 현명한 판단이었으되… 아무래도 미국, 일본기업들과의 물밑협력을 먼저 타진했으나 조건이 안맞아 고육지책 즉자개발을 선택했다고 추론하는 것이 자연스럽지않을까? (물론 어디에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당시엔 국가간 지적재산권 개념이 모호하던 시절이었기에 금성사가 용기있게 일본모델 배끼기를 시도했을 법하다. 따지고 보면 SF-78를 만든 산요도, 또는 다른 기업들도 미국이나 유럽의 기술이나 디자인을 가져다가 무단 활용했다.

(Sanyo SF-78. 사진 출처와 소개의 글 : http://minkara.carview.co.jp/userid/240223/blog/33168343/)

1961년 박정희 대통령이 판매부진에 시달리던 금성사 공장을 방문한 후 밀수품 근절 정책을 시행하고 이후 ‘농어촌 라디오 보내기 운동’을 진행하여 금성사 라디오가 뜻하지않았던 혜택을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어수선한 시절의 국가주도 라디오 보급사업은 일본, 독일에서도 사례가 있었는데 일견 독재 집단들은 국민계도를 전방에 내세우지만 말 한 마디가 빠르게 전파되고 이런저런 실시간 홍보할 수 있는 통제형 언론매체를 선호한다. 문맹률이 높으면 더 더욱 그러하고… 그 시절에는 라디오만한 것이 없었다.

현물을 분해하여 재설계하고 독일 부품들을 들여와 어렵게 87대를 생산했다는 A-501. 경기도 등록문화재 559-1호, 서울시 등록문화재 559-2호로 지정되어 있고 최근 7천 만 원 대 가격표가 붙은 A-501이 경매에 나왔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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