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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좋은 소리는 없다?

글쓴이 : SOONDORI

소리는 곧 파동 에너지. 어떤 물리적 에너지가 매질인 공기를 통해 전달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므로 오디오 시스템은 파동을 보관하고 재현하는 속내 뻔한 장치. 그런데 사람들은 눈 앞 시스템과 시스템이 만든 파동을 각기 다르게 해석하고 “그러니까 이게 좋은 소리”, “그래서 저게 좋은 기기” 운운하며 끝없는 갑론을박 대화를 이어간다.

사람들, 감각의 현재 상태, 인지능력이라는 게 각양각색일 것인데 어떻게 절대적인 해석의 목표 즉, ‘완벽하게 좋은 소리’를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일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 온갖 방증 자료들 들이밀며 이야기해도 결국 화자의 머리 안에 들어갈 수 없는 만큼은 자의적이다. 그러므로 오디오 시스템에 관한 한 인간은 ‘절대적으로 좋은 소리’를 정의할 수 없음이고 그래서 ‘절대적으로 좋은 기기’도 정의되지 않는다.

논리상 그렇다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그러함. 다만, 공통분모로서의 소리를 찾고 비교하는 기준점은 마련할 수 있다. 사실, 극단의 휴대성이 강조되면서 청취 여건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요즘의 디지털 오디오 세상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자들이 파는 정체불명의 오디오 시스템들 넘쳐나는 세상에서는 좋든 나쁘든 나만의 기준점이 있다는 게 큰 도움이 된다. 그 기준점을 마련하는 방법으로는,

원음, 사람과 악기가 내는 실제 음을 기억하는 것.

연주회장의 첼로 연주, 기타 연주, 가수의 발성 등 직접 들었던 음을 잘 기억해두면 아주 좋다. 기준 음색에 대한 기억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니 한번쯤 공연장에 가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눈높이를 낮춘다면 집에 싸구려 기타라도 하나 있으면 충분히 복 받은 상황. 물론 시각적 기억처럼 음의 기억도 개인차가 있고 언젠가는 사라지니 문제이기는 하다. 한편, 연주 음이 현장 오디오 시스템을 타고 내 귀에 들어오면 모르는 장치에 종속된 기억을 하게 되니까 의미가 없다.

재생, 기회 될 때마다 권하는 1980년대 빈티지 HiFi 시스템들.

그 시점은 전 세계 수천 개 오디오 업체들이 죽기 살기로 정확한 소리 전달을 위해 뛰던 시절이었다. 19세기 말 처음 등장한 다이내믹 스피커는 80년대 이전 네빌 틸(Neville Thiel)과 리차드 스몰(Richard Small)의 ‘T/S 파라미터’로 속성 정의가 완성되었고 내구성 관점에서 다소 불안했던 50~60년대 진공관 앰프가 값싸고 튼튼한 트랜지스터 방식으로 바뀌었으며 그런 모든 것들이 FM의 약진, CD의 등장 그리고 세계대전 없는 얼렁뚱땅 평화의 시대와 맞물리면서 전 세계 오디오의 대중화 즉, 오디오의 골든 에이지를 만들어 냈다. 21세기 이후로 그런 시절은 다시 오지 않는다.

HiFi는 괜히 붙였을까? 전자장치마다 음이 다르다. 그러므로 보편타당한 소리를 추렴하려면 많이 팔리고 많이 쓰였던 만큼 절대다수가 들어보았고 가장 좋은 것이 선택되었을 80년대 오디오 시스템을 기준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본다. 실제 연주음은 영원히 기억될 수 없으니까 적당히 좋은 음반 하나를 종종 듣고 머릿속에 재 기억시켜두면 여하한 상황에서도 듣고 있는 소리가 원음에 충실한지 아닌지를 가늠할 수 있다는 논리. 당연히 집에 있는 5만 원짜리 둥글둥글 카세트 라디오가 대신해 줄 수 없다.

“그 소리가 그 소리지… 왜 그렇게 복잡하게 살아요?”

가만 보면 이 세상 사람들은 오디오의 ‘오’자를 모르기에 ‘맛있는 소리’가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사람, 듣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 파동 에너지를 절대적으로 해석하려고 끙끙대는 사람, 수단은 개의치 않고 내용 해석에만 집중하는 사람, 네 부류로 나뉜다.

파동 해석가 스타일이되 기준점 없는 분은 종종 반복되는 기기 교체로 소모적인 행태를 보이고 내용만 듣는 분은 자연스러운 소리를 듣는 기쁨을 놓치기 일쑤니 마땅히 좋을 것 없음이며 특히, 항상 맛있는 음식을 상상하면서도 ‘맛있는 소리’에 착안하지 못하는 분은 하루하루, 기회의 시간을 무심히 버리고 있는 셈이다.

하루하루? 척도인 청력은 시력처럼 취급되어야 할 것인데 15Khz 이상을 들을 수 있는 평균 나이와 점진적 신체노화를 상정할 때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시간은 별로 없다. 한 달에 몇 시간, 1년에 몇 시간 그런 식으로 더하기를 해보면 답이 나온다. 한편으로 아이들은 부모를 따라가게 되어 있으니 인생 막 귀의 대물림을 막자는 동기까지 포함하면 마음은 너무 바쁘다.

음에 대한 기준만 갖고 있다면 적은 돈으로 얻는 게 훨씬 더 많은 오디오 세상. 기왕 사는 인생인데 공통분모, 보편적인 소리를 찾기 위해 더 복잡하게 살려고 노력할만한 가치가 있다.

* IT조선 기고 원고(2020.05) → 공개(2020.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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