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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미국 히스키트 社의 망라적 활동들

글쓴이 : SOONDORI

초창기 금성사 + 장사동 007 키트 + 교육용 실습 기자재 만들던 (주)ED + 우체국 택배 등을 모두 합쳐 놓은 듯한 사업을 했던 미국 히스키트 社.

1911년 Edward Bayard Heath가 설립한 소형 키트 항공기 제작업체로 출발, 제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1990년대까지 전자키트를 전방에 내세우며 활발한 사업 활동을 전개한다. 제품군은 저항 한 개 들어간 것부터 진공관, 트랜지스터 들어간 것까지, 오디오와 컴퓨터까지, 흔히 ‘전자 제품’으로 간주될 모든 것을 망라하고.

“이게 무슨 백화점, 양판점, 잡화점도 아니고…”

가만 생각해보면 그들 성장의 배경에는 제2차 세계대전 후 급격히 견고해진 팍스-아메리카나(Pax Americana)가 자리하고 있다고 본다. 한때 풀 가동했던 산업계에 의해 무엇이든 차고 넘치는 세상이 되었다면… 먹고살 만하면 재미난 것 추구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그들은 떼부자 되셨나? 아니요. 너무 망라적이었던 히스키트가 전문성 있는 GE나 HP, 미친 듯 앞서나간 일본 기업들을 능가할 수는 없었던 것이라… 2012년 도산했고 현재는 전설로 남아 있다.

* 관련 글 : Heathkit GR-150, TRF 키트 라디오

아래는 1967년 판, 자신만만했던 히스키트 사의 제품 팸플릿 일부. 적당한 감상을 위해 발췌, 게시한다. (잘 나가던 시절이라서 그런가 사장 님께서 약간 거만하시네?)

(▲ 땅 덩어리가 큰 미국은 워낙 우편 판매가 많았던 나라. 소비자 입장을 고려하여, 전체 비용을 낮출 요량으로 공장 조립비를 걷어낸 KIT를 우선 시 한 것은 치밀한 전략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고육지책이었을 것. 더불어… “당신이 직접 만들었는데 왜 우리가 A/S까지 해줘야 하죠?” 논리도 성립한다. 이 전략은 극강의 제품을 원하는 시장에는 맞지 않다. 달나라에 사람 보내는 장면에 고무된 소비자들에게 전자 장치를 공급하는 단계에서… 처음 보고 처음 쓰는 물건은 대충 동작해도 그만인데 얼마 후 기능에 익숙해진 고객은 더 좋은 물건을 찾게 되어 있음. 보편성 중심의 빠른 보급에는 유리하지만 절대적 수준의 고급화를 추구하기는 어려운 비즈니스 모델, 그게 히스키트의 발목을 잡았으리라 생각한다)

1967년 Heathkit 제품 카탈로그

1967년 그 시점, 대한민국의 사정은 어떠했을까?

‘한국은행 경제통계’ 기준 1967년 1달러는 약 274원이었다고 한다. 표제부 리시버 가격을 100달러로 간주하면 한화 2만 7,400원. (3만 원도 안되는 푼돈?) ‘통계청 화폐가치계산’ Web 기준 1967년 대 2019년의 물가 배수가 30.875이므로 2019년에는 845,975원이다. 여전히… “까짓 별 것 아니네!”

무슨 말씀을요?

서울 시내버스 요금 8월@1965년, 연탄 한 장 10원@1967년, 지하철 1호선 구간요금 30원@1974년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Cash Out 관점의 숫자일 뿐이고 Cash In이 더 중요함. 1970년대 초 샐러리맨 평균 월급이 2만 원쯤이었다고 하니 완전히 가족 쌀 독과 맞바꾸기가 되겠다. 미제 기기 수입에 붙는 천정부지 비용까지 고려하면… “내가 말이여~ 다섯 달치 봉급 모아서 간신히 그거 샀어. 이혼 당할뻔 했꾸”가 되겠고.

한때는 문화적, 경제적 넘사벽이었던 미제 전자세상.

그러니 이제는 충분히 감가된 빈티지가 존재한다는 것, 인터넷이 있다는 것, 원격 결제가 가능하다는 것, 글로벌 물류가 있다는 것, 국가 경제력 성장 등을 다 합친, ‘근 60년 세월의 흐름’에 고마워해야 한다.

한편, 물이 흐르듯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동일 행태가 대한민국~동남아/아프리카 등 국가 사이에서 반복되고 있으니 챙겨둘 만한 국산 제품이 있다면 최대한 빨리 찾아보는 게 좋음. “미국의 물탱크는 지구만큼 허벌나게 크고 마르지 않는 오아시스이지만 우리나라 물탱크는 개미 똥꾸멍맨치로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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