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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켈 CD-300 카세트 데크 사진들

글쓴이 : SOONDORI

“고맙습니다” 아래는 2021년 5월 9일, 김동오 님께서 제공해주신 인켈 CD-300 카세트 데크 실물 사진들. 명백히 국산 레어 아이템. TD-100 튜너와 소리 좋은 AD-400 인티앰프가 제 짝이다.

25~15Khz@Normal/25~16Khz@CrO2, 25~16.5Khz@Metal, Dolby-B, THD 1.0%,제작 년도 1984년 12월.

(▲ 어떤 시절에는 Auto Shut-Off가 특히 강조할 만한 기능이었더라는…)

(▲ 짜인 사각 영역 안에 MIC 단자를 집어넣으려다가 약간의 디자인적 무리수를 두었다고 생각한다)

(▲ Record 절환 처리를 위해… 데크 메커니즘에서 스위치까지 길게 연결된 와이어)

인켈 TD-100, AD-400, CD-300이 함께 모여있는 장면은 흔히 보기 어렵다.

[ 관련 글 ]
인켈 TD-100 아날로그 튜너 사진들
인켈 AD-400 인티앰프에 대한 기록 (1), “외관 및 성능 양호합니다”


○ 소중한 사진 자료에서 최대한의 정보 텍스트 뽑아내기.

대한레코드사 발매 테이프, 문공부등록 제28호 공륜위작품심사 필, 1) 아내의 노래, 유호/손목인/은방을자매, 2) 찔레꽃, 김영일/김교성/박재란, 3) 꿈에 본 내고향, 박두환/김기태/한복남, 4) 울어라 기타줄아, 무적인/이재호/손인호, 5) PASS, 6) 번지없는 주막 추미림/이재호/***, 7) 목포는 항구다, 박남포/이봉룡/이난영, 8) 귀국선, 손로원/이재호/이인권, 9) 황성옛터, 왕평/전수린/손시향.

아~항! 네다섯 곡은 어렴풋하게 알겠다.

○ 다음은 대한레코드사에 관한 인터넷 기록.

[권영재의 대구음악유사]50년대 전국을 주름잡은 대구음악 (매일신문, 2018년 08월 29일, 출처 : http://news.imaeil.com/Satirical/2018082616284122292)

51년 여름. 당시 한국 최고의 작곡가 박시춘, 작사가 강사랑 그리고 가수 현인 셋이 양키시장 강산면옥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다 박시춘이 갑자기 좋은 악상이 떠올랐다며 ‘오리엔트’ 다방(자유극장 옆 ‘남성악기’ 2층.)으로 강사랑과 현인을 끌고 올라간다. 다방 한 구석에 군용 담요를 두 세 겹으로 얼기설기 엮어 방음장치를 해둔 곳이 ‘오리엔트 레코드사’였다. 이날 이렇게 탄생한 노래가 ‘굳세어라 금순아’이다.

1950년대는 한국전쟁으로 음반시장은 최악의 침체기였다. 그러나 1947년 이병주 선생이 대구에 설립한 오리엔트 레코드사는 서울서 피난 온 작곡가, 작사가, 가수들과 스스로 발굴한 가수들로 주옥같은 곡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신세영, 남성봉, 강남달, 고화성 방초향을 배출한 오리엔트는 주기적으로 신인 콩쿠르를 개최하여 도미, 방운아, 남일해등을 발굴해내었다. 오리엔트 사에 속한 작곡자들은 박시춘, 이재호, 손목인, 이병주, 이인권, 엄토미등이 있었고 작사가들은 강사랑, 손로원, 김다인, 나경숙(이서구), 임영일(이인권), 유호, 손석우 들이 있었다. 전속가수로는 남인수, 백년설, 진방남, 이인권, 장세정, 심연옥, 현인, 백설희, 나애심, 신세영, 금사향, 이남순, 방초향 등이 있었다.

이 회사에서 발표한 노래들 중 ‘비 내리는 고모령’, ‘신라의 달밤’, ‘귀국선’, ‘전우야 잘 자라’, ‘태극기’, ‘전선야곡’, ‘아내의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 ‘미사의 노래,’ ‘아메리카 차이나타운’, ‘럭키 서울’. ‘님 계신 전선’, ‘이별의 탱고’, ‘촉석루의 밤’, ‘쌍가락지 논개’등은 가요의 전설이 되었다. 총 80∼90매의 음반으로 160∼170여곡을 발표하였다. 고화성이 ’38선 야화’, ‘꽃 피는 진주 땅’을 취입하여 한창 인기몰이를 하던 중 6.25전쟁이 발발한다. 전쟁 중에는 대구의 오리엔트와 부산의 코로나가 우리나라 50년 가요의 맥을 잇는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오리엔트가 승승장구할 무렵 평양에서 대구로 와 ‘상신악기점’을 하던 김철준, 영준 형제가 ‘유니온 레코드사’를 설립하여 송민도의 ‘애수’등의 음반을 출시한다. 1953년 유니온 레코드의 공동운영자였던 김영준씨가 백년설, 진방남, 이재호등을 영입하여 ‘서라벌 레코드’사를 설립하고 ‘방랑의 처녀(진방남)’, ‘다방아가씨(허민)’, ‘해인사 나그네(백년설)’등을 발표하지만 1년 여 만에 문을 닫는다.

한 때 대구에는 오리엔트, 유니온, 서라벌, 아카데미 등의 레코드사가 번창한 적도 있었다. 46년 한국 최초로 서울에 ‘고려레코드’가 설립되었고 이어 ‘조선’, ‘아세아가’ 태어난다. 이어서 대구의 ‘오리엔트’ 다음에 부산의 ‘코로나’레코드사가 탄생한다. ‘고려레코드’에서 남인수의 ‘가거라. 삼팔선’과 김천애의 ‘애국가’가 나온다. ‘아세아’에서는 이봉룡 작곡의 ‘우러라(울어라) 은방울’, ‘달도 하나 해도 하나’가 발표되고 럭키레코드에서 ‘신라의 달밤’이 나왔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으로 한 때 대한민국 유일의 레코드사로 이름을 떨치기도 했던 오리엔트레코드사의 사세도 점점 시들어진다. 레코드가 SP에서 LP로 전환되며 오리엔트도 1956년 ‘비 내리는 호남선’으로 LP판을 내기도 하였지만 서울이라는 거대한 골리앗을 이기지 못해 1958년 문을 닫는다. 60년대 들어서며 아카데미레코드사에 의해 한국의 본격적인 LP시대가 열리게 된다. 이병주 선생은 서울로 올라가 ‘대한레코드’사를 1년 남짓 운영하다가 재기하지 못하고 귀향을 하고 2013년 귀천한다. 대구는 선구자 이병주를 오래 기억할 것이다. 전 대구적십자병원 원장.

자, 그렇다면… 대한레코드사의 노란색 음반 테이프도 심각한 레어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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