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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sys 486 PC와 대한민국의 고려시스템산업, Made in Korea

글쓴이 : SOONDORI

486 세상이 도래하던 그 시점에, (주)고려시스템산업에서 보드를 설계했던 분을 알고 있다.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삼보 트라이젬, 현대전자 솔로몬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그 시절의 대한민국 컴퓨팅 세상은 물론 글로벌 시스템 세상에서도 상당히 앞선 기술을 자랑하던 회사였다는 말씀이. 곧바로 잡지책에서 봤던 그래파이트(Graphite) 브랜드 이미지가 떠올랐고…

그도 그럴 것이, 줄임말 고려시스템의 주 거래선인 미국 유니시스(Unisys, 1986년 Sperry, Burroughs가 합병한 조직)는 메인 프레임급 컴퓨터를 만들던 회사였다.

그러한 글로벌 기업과의 거래 환경 덕분에 인텔이 방금 만든 따끈한 486DX CPU를 가장 먼저 입수하고 1990년 즈음으로 기억되는 시점에, 가장 먼저 독일 하노버 전시회에 참여하여 글로벌 시장에 ‘전 세계 최초’였던 솔루션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 (반대로 생각하면 삼보나 현대 등은 신형 CPU 선점에서 약간 불리한 입장이었을 듯) 물론 사업주의 전폭적인 지원도 일조.

(▲ Unisys 4163SX PC. 표제부 사진 포함 출처 : https://www.ebay.com/itm/334155003571)

80~90년대의 PC는 상업용 기술의 총아였다.

그것에 통신장비 전문기업 동양전자통신(OPC)의 기술이 잘 결합되었더라면 고려시스템산업이 오늘날의 삼성전자에 버금가는 기업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버거운 인수 시도와 모기업이나 다름없는 한국화약그룹의 지원 중단에 의해 1976년에 사업을 시작했던 고려시스템산업은 1991년 10월 8일부로 역사에서 사라진다.

참고로 한국화약의 그늘 아래에서 활동했던 고려시스템산업의 이동훈 회장은 부친이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고 한화 김승현 회장과 가족관계가 있으며 아들은 최근 화재가 발생했던 이천 쿠팡물류센터를 운영한다고.

한번의 득세가 ‘화약’과 연결되고 n세대를 롱런하는 게 불만이지만 와중에 시대를 앞서 나가려고 전폭적인 R&D 지원을 했다는 이동훈 회장의 행보는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고 본다.

(▲ 이동훈 회장. 출처 : 1990.11.30 경향신문 기사,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https://newslibrary.naver.com/search/searchByDate.naver)


(내용 추가)  초기 고려시스템산업의 활동은… 70년대에는 첨단기기였던 전자식 금전등록기(Ultra/3000, Ultra/9000)를 제작하여 국내 일부 또는 미국에 수출하거나 KIST 등 연구기관에서 주로 사용하던 미국 크로맹코(Chromenco, 1974년~1987년)社의 Z-80 기반 컴퓨터를 수입, 판매하거나 일본 Y 데이터 시스템의 도트-메트릭스 프린터를 수입, 판매하거나… 그런 정도.

그러다가 1980년 초반, 그 시절에는 여러 개 터미널을 물리는 워크스테이션급 컴퓨터로 간주되었던 386DX(16Mhz 또는 20Mhz)를 즉자 개발하고 이후 DX가 아닌 386SX를 독일 지멘스, 일본 Unisys Japan에 수출을 하였으며 그것이 계기가 되어 대만 Acer, 금성사 등 경쟁 업체를 제치고 미국 Unisys와 직거래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화약그룹, 컴퓨터산업 본격진출. (중앙일보, 1982.06.11, https://www.joongang.co.kr/article/1638885#home) 한국화약그룹의 전자식 금전등록기 전문생산업체인 고려시스템산업(주)은 일본의 소프트웨어 전문용역회사인 코어디지튤사와의 기술제휴로 생산한 사무용 소형 컴퓨터 1만대(2천5백만 달러 상당)를 미국에 수출키로 계약을 맺었다. 한국화약그룹은 이를 계기로 약 1백억원을 투입, 부평에 2천평 규모의 컴퓨터 생산공장을 세우고 미국과 일본에 대규모 기술연수단을 파견할 계획.

일본소프트웨어 회사와의 협업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크로맹코 시스템으로 체득한 기술력이 변화의 밑바탕이 되었을 듯. 한편으로 KAIST와 협업하여 IBM 호환 기종에서도 돌아가는 ‘명필’ 워드 프로세서를 개발하였다. 그게 1983년.

(출처 : 국내 정보산업 연대표 1980년-1993년)

초기 486DX 개발 시점에는 미처 전용 칩셋이 소개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 1989가 각인된 486DX CPU)

그래서 486DX과 386DX 칩셋을 조합하되 클럭을 적당히 조절하였다고 한다. 말하자면 하노버 전시장의 486DX는 Full Speed가 아니었다. 이후 내장 부동소수점 연산기에 결함이 있었던 486DX를 버리고 FPU가 제거된 486SX에 Weitek 코프로세서를 적용한 33Mhz급 모델을 출시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다양한 제조사의 오버클럭 방식 486DX-66이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고려시스템산업의 파산 직후 30여 명의 핵심 개발인력은 포스코 계열사 ‘포스데이터’로 이적한다. 그리고 90년대 초반, 486SX CPU와 인켈의 A/V 기술을 조합하는 컨셉에 대해 양사간 기술 검토가 진행되었다고 하는데…

최초 발제는 고려시스템산업 이적 인력 쪽에서 하였으나, 어쨌든 인켈 연구소가 상당히 지능적인 오디오 시스템을 만들려고 했다는 것인데… 그게 뭘까?

Multimedia PC. 요즘은 그냥 당연히 멀티미디어 PC가 아닌지? 그렇게 보면 앞서 나갔던 생각이다.

그리고는 몇 년 후 격랑의 시대가 도래하였으니… 1994년, 인켈이 해태전자에 전격 인수되었고 1997년에는 IMF가. 누구는 2000년대부터 LCD 모니터로 돈을 벌고… 그렇게 굴러가다가 2008년 이후 Apple 발 완벽한 IT 기술 및 시장의 재편에 이르기까지. 아? IBM이 2005년부 레노버 브랜드를 중국에 매각한 것을 포함하면,

“이제 PC와 오디오는 핸드폰보다 싸다”


(2021.11.17, 내용 추가) 다음과 같은 후속 SNS 멘트가. 편집없이 그대로 붙여 놓는다.

“1983년에 개발한 명필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와 협력하여 개발한 워드프로세서 전용기기로, S/W 개발은 KIST가 주도하고 H/W 설계는 고려에서 진행. OS는 크로멩코의 C-DOS 를 사용. (내 해외 첫 출장이 산호세에 있던 크로멩코였고 이 곳에서 C-DOS소스를 구하여 5,25인치 FDD 2DS를 2DD로 스토리지 영역을 확장하여 명필 프로그램을 탑재하여 출시), 주고객: 청와대를 비롯한 주요 국가기관에서 사용. 1989년부터 독립기념관에 보전 전시 (현재는?), IBM PC용 S/W 워드프로세서 명필은 1987년경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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