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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nco R-600 리시버의 오류와 서음전자공업의 활동상

글쓴이 : SOONDORI

“동기 유발! 서음전자 오디오가 좋다는 분의 글은 많지만 나머지, 더 많은 것이 언급되는 경우는 드물다. 해서… 쪼가리 정보를 찾아가며 서음전자공업의 과거 활동상을 탐구 중. 앞으로도 쭉~”

1978년 서음전자 OEM 또는 ODM 수출품. 아닌 게 아니라… 조립하는 것조차 정말 까다롭게 생겼다.

52W@8오움, 10~40Khz, S/N 60dB, THD 0.1%, 520mm × 350 × 130, 8Kg.

(표제부 사진 포함 출처 : https://audiokarma.org/forums/index.php?threads/lenco-r600-keep-it-or-toss-it.628032/)

실제로 현지 수입품 검사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Seoum은 1978년 Lenco R 600 Receiver의 개발 및 생산을 위임받았던 회사였습니다. 제품이 (독일) Burgdorf 항구에 도착하면 최종 점검 후 뒷면에 Lenco 스티커를 붙이게 됩니다. Lenco R-600은 600 시리즈의 일부였는데 스위스 규격의 QC 단계에서 상당한 수량에 문제가 발견되었고 판매 전 수리가 필요했습니다. 1980년 2월, 한국에서 40대 이상을 직접 수입했던 (렌코 대리점) Nho BV사 요청으로 네덜란드에 출장을 갔는데 살펴보니 대부분이 수리대상이었습니다!

South-Korean OEM Manufacturer Seoum was the company that the Lenco R 600 Receiver developed and produced in 1978. When they arrived in Burgdorf they went through their final check where it got its Lenco sticker on the rear side of the unit. The Lenco R 600 was part of the series 600. Many of the units failed the QC in Switzerland and needed repair before they could be sold. I was also in the Netherlands in February 1980 to check and fix more than 40 units for Naho BV – the distributor got them directly from South Korea – most of them needed to be repaired ! (글 위치 : https://www.resus.ch/lenco-r-600.html)

“1978년의 품질관리부서, 조립라인에서 온통 난리가 났겠군!” 그러면, 이것이 박병윤 선생님께서 기억하시는 ‘구라파 수출 사고’ 에피소드?

“(Q) 아무리 뒤져도 얼굴 사진이 없고… 1989년까지 제품이 나왔는데 그 이후 서음전자가 어찌 되었는지와 엄익정 대표가 어찌 되셨는지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A) 수출품이 나가 가지고 불합격 되었어요. 구라파에 나간 게. 그래 가지고 그거를 수습하려다가… 엄청난 손해배상금도 나가야 하거든요. 바꿔줘야 하거든요. 역부족이었다고 봐야지요. 정말 안 되었다고. 품질관리를 한다고 했는데…”

* 관련 글 : 서음전자공업주식회사 엄익정 대표에 관한 가벼운 대화

그나저나 글 쓴 분의 말씀대로라면, 1978년에 유럽 수출품에 QC 문제가 생겼는데 2년이 지난 시점까지도 서음전자가 제대로 조치하지 않고, 생각 없이 그 ‘문제의 유럽’에, 문제의 불량 제품을 건낸 것이 되어버린다. (위 글에서 시차를 둔 에피소드가 별건으로 2개라는 점에 유의)

도대체 왜? 무엇이? 어떻게?

혼자 답답해서…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가 제공하는 주요 기사를 연도별로 정리하고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이하 자료의 상세 출처는 생략)

* 관련 글 : 과거를 보는 통로,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 1975년 : 창업, 기술사원/생산/경리/무역/타이피스트 등 인력 모집 기사
○ 1976년 : 약 2,600평 대지에 3층, 연건평 1,182평짜리 부평공장 준공 알림 기사
○ 1977년 : 수출 유공자 표창 홍보 기사
○ 1978년 : 럭키 그릅 소속 종합무역상사인 반도상사가 공동 창업자 서병수 씨의 지분 50%를 인수했다는 기사
○ 1979년 : 스페인에 자가 상표 seoUm을 사용한다는 기사, 반도상사가 서음전자 등 5개사 계열화에 14억 7천만 원을 투자했다는 기사, “독일의 Strato가 한국에서 STRAUT로 그未知(미지)의 얼굴을 선 보입니다”라는 제목의 광고 (, 서음전자가 주 거래선이었던 독일 스트라토의 발음을 차용한 것으로 이해함. ‘독일제’에  담긴 묵중한, 암시적 가치를 생각하면 상당히 좋은 작명)

(▲ “세계 각국에 수출한 음향기기의 브랜드”, 독일 스트라토, 스위스 렌코, 미국 오디오포닉스/올슨, 프랑스/영국 텐사이, 이태리 텍소닉, 캐나다 시어스/오디오 리플렉스, 스페인 자사 seoUm. 휴~ 많다. 채굴을 하듯 단어를 따라가 보면 또 다른 정보가 나오게 될 것임. 어찌 보면 금 광맥을 발견하였다는…)

○ 1980년 : 공업진흥청장 상 수상 기사, 휴대형 카세트를 출시한다는 기사, 프랑스 필립스, 영국 NAS와 기술 제휴로 50mm Slimline 신제품을 개발한다는 기사, “소리는 안다. 선택할 Audio는 없었다. 매킨토시(MCINTOSH)와 비교해 보십시오”라는 광고, 독일 Dual 턴테이블 수입권을 갖고 있는 고려전자(박병윤)과 거래하여 자사 컴포넌트에 수입품을 끼워 팔기 했다고 힐난하는 기사. (, 외산 혐오증을 고의로 부각하는, 그 시절의 사회적 기조에 타 사의 전술적 공략이 겹친 것으로 이해함)

“서음전자 종업원 3백 50여 명은 임금 55.65% 인상을…”이 기록된 기사, “「회사 살리기」운동은 경기도 인천 시내 서음전자(대표 嚴翼井(엄익정))에서 시작돼 한국수출산업공단내 새서울상사,삼익악기,동양나이론 인천제철에…”이 기록된 기사

○ 1981년 : 황당하게도… 국군보안사령부가 서음전자에 침투한 고정간첩을 체포했다는 발표 기사 (, 국가에 의한 조작이 많았던 시절이다. 앞선 노사분규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 미국 ESS와의 거래 시도를 사전에 홍보하는 기사, 미국 SAE, NAD와 거래 모색 기사 (SAE Two의 국내 위탁생산을 할 뻔 했다), KL-1000/KL-4000/KL-4500/KL-4600E/Classic-11 홍보 기사, KA-4130B 단독 홍보 기사

* 관련 글 : 서음전자와 미국 ESS사의 거래 사례

○ 1982년 : 유럽향 뮤직센터 봄베 2500의 출시와 더불어 수출이 늘고 있다는 기사, 외형 부풀리기를 척결하려는 정부의 9.27 조치에 의한 계열사 영도피혁 강제 분리를 다룬 기사
○ 1983년 : 신형 더블데크 뮤직센터 판매 개시 기사, 규모가 급상승하고 있는 PA 시장에서 경쟁한다는 기사

○ 1984년 : 봄베 3000 생산 예정을 알리는 기사, 5억 6천만 원을 들여 인공위성 리시버 등을 개발한다는 기사
○ 1986년 : 출국 정지 기사
○ 1989년 : 후면 라벨의 일자 기준, 그해 8월까지도 KT-7090 튜너와 KA-9009 인티앰프를 제조하였고…

[ 관련 글 ]
서음전자 스트라우트 KA-9009 인티앰프 사진들, Made In Korea
서음전자 스트라우트 KT-7090 아날로그 튜너 사진들, Made In Korea

○ 1995년 : 금융 부실거래 처리 기사 → 이때까지 법인격이 그대로 존속했다는 뜻.
○ 2017년~2019년 : 2017년에 부음 기사가 있다. 단, 그 분이 엄익정 대표인지는 확실하지 않음. 참고로 박병윤 선생님께서는 2019년을 언급하신 것을 보면…

이상에서, 1980년이 극상의 전상기였고 반도상사의 투자는 그 활동에 연계되어 있을 것이며 대체로 1990년~1995년은 법인은 존재하되 기업 활동은 완전히 실종된 기간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1980년을 전후로 외부 투자, 왕성한 활동, 계열사 정리, 노사 문제 등 기업 경영이 뭔가… 원만해 보이지 않고, (경영자 및 근접 레벨에서 바라보는 역사와 근로자가 바라보는 역사는 다름)

<구라파 수출 사고>는 서음전자 운명을 결정한 변수가 아닌, 단순한 변화의 결과물이 아닐까 싶으며 1980년 중반 이후, 갑자기 기사 빈도가 뜸해진 것은 경영 부조화에, 국내/해외 시장의 제품 트렌드 변화와 극도로 치열해진 시장 경쟁이 악영향을 준 것이라고 보는 게… 그럴 듯하다.

이 수출형 기업이 몇 년을 더 버텼다면, ‘IMF 환란 시대’의 막대한 외환차익으로, 그러니까 0.1% 확률로 정상화될 수 있었을지도? 글쎄요? “살아남아야 잔칫상을 차리죠?” 쇠약해진 기업에게는 언감생심인 기회였을 듯. 그다음에 모든 것을 무력화시킨, 아주 강력한 MP3 세상이 도래하였으니 결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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