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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구미공단

글쓴이 : SOONDORI

한국의 실리콘 밸리로 불리우던 구미공단, 구미전자공업단지는 1969년 9월 16일 ‘공업단지 조성 실시계획’ 인가 후 낙동강 주변 구미읍에 순차적으로 조성된 국가산업단지.

1978년에 촬영한 것으로 추정하는 최하단 링크의 영상에서, 전체 면적 318만 평, 110개 공장 입주, 2,7000여 명 근로자, 72,000여 명 인구, 신시가지 조성, 10개년 계획이 끝나는 86년에 인구 25만 명 수용 등이 언급된다. 그렇게 현시점, 40여 만 명이 거주하는 구미시가 탄생하였다는… 전설같은 이야기.

* 국립영화제작소가 제작했던 ‘대한늬우스’ 제1173호 URL : https://www.ehistory.go.kr/page/view/movie.jsp?srcgbn=KV&mediaid=10144&mediadtl=20718&gbn=DH

국가의 정책적 판단은 아래와 같은 배경에서.

전자산업은 한국전쟁을 전후한 라디오 수요의 증가와 1959년에 설립된 금성사를 통해 발전하였다. 특히 금성사의 설립은 소규모로 성장하던 전자산업을 기업화하는 효시가 되었고, 전자산업은 1960년대 중화학공업화 육성정책의 전략산업으로선정되면서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후, 1966년 수출전략산업으로 지정되고, 1967년 구미전자공업단지의 건설(註, 착상일 기준으로 년도를 기표하신 듯), 1969년 「전자공업진흥법」 제정 및 〈전자공업진흥계획〉 발표, 1982년 〈반도체공업육성세부계획〉수립 등 전자산업 육성을 위한 조치들이 이루어졌다. (

그러나 전자산업 집중육성의 계기는 당시 미국 콜롬비아 대학 전자공학 교수인 김완희 교수의 연구결과 보고서였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섬유공업 만으로는 수출신장에 한계가 있음을절감하였고 일본과 대만의 사례를 검토하면서 전자공업의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이에 김완희 교수를 국내로 불러 국내 전자공업회사들을 둘러보고 보고서를 제출해 줄것을 당부하였다.

김완희 교수는 1967년 한국의 전자제품 수출액은 655만 달러로 전체 수출액 3억2천만 달러의 2%에 불과하지만 전자공업을 육성하면 1971년에 전자제품만 1억불 수출이 가능하다고 보고하였다. 그후 1년뒤 ‘1968년 1971년 1억달러의 전자제품 수출을 위해 한국전자사업진흥원을 설립’할 필요가 있으며, ‘한국전자사업진흥원에서 전자〈사업개발 5개년계획〉을 수립하고, 품질관리, 검사 및 시험, 기술자 시험, 외국으로 부터의 기술도입, 시장조사, TV브라운관 공장 건설 및 운영, 교육TV방송국 소유 및 운영 등을 달성해야 한다’고 연구결과를 보고하였다. 이러한 내용에 대해박정희 대통령은 상공부의 검토를 지시하였고, 이것으로 전자산업 육성정책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출처 및 정보 열람 : https://www.archives.go.kr/next/search/listSubjectDescription.do?id=001633&sitePage=1-2-1)

관련 글 : [오디오의 역사를 만나다] 고려전자 마샬, 박병윤 (1)

(시점 불문) 입주했던 전자 중심 회사는,

금성사(TV 등), 삼성 코닝, 대우전자(VTR 등), LG 반도체, 쌍용그룹/승리전자, 거성전기, 오리온전자/전기, 한국 산우드(스피커), 두산전자, 한국대화금속(VCR 부품), 대한전선, 천일사전자, 한국전자(트랜지스터 등), 패시픽전자, 엘렉트로보이스, 국제상사, 금호그룹/금호전자, 오성전자, 가미전자, 금성전선, 서진전자, 진해전지,한국전자부품공업, 전광사, 한국전기초자, 동아신영(PCB), 스미다전기, 한국도시바, 한국TV, 구미전자, 한국신영(전해 콘덴서), 한국가미전자(소형 변성기), 신영공업(PCB), 동경영전기(소형 변성기), 스미다 전기, 삼양전기(TV/튜너), 동양나이론(히타치 PC), 대신전연(RF 코일), 해평전자(TV 편향코일), 서통, 두고전자(TV 부품), 두산전자… 아주, 아주 많다.

참고로 (복 수 공장 불문) 다른 곳에 있었던 오디오 공장은,

동원전자(의정부시/서울 도봉구/천안시), 서음전자(인천시 갈월동 수출공단), 롯데-파이오니어(서울시 구로동 공업단지, 그 일대는 현재의 ‘서울디지털국가산업단지(구로디지털단지 + 가산디지털단자)이다), 아남전자(안산시 단원구 성곡동), 태광산업(안양시 만안구), 화신소니(인천시 도당동/부천시 소사구, 과거 지명 ‘소사’, 지금의 부천시 역곡동은 국민학교 2개 학년을 보냈던 곳), 한국샤프(인천 부평공단), 삼미기업(서울시 성수동/충북 음성), 한국전자부품공업(구로동 공업단지, 지금까지 서울시 구로구 가산동), 한국전자(천안시), 천일사(서울시 광진구 중곡동), 성우전자(현재의 구리시)…

거대 소비처 서울, 수출 루트인 인천항과 부산항, 어찌 하다가 땅값에, 한번 자리를 잡으면 이후는 부품/외주 하청 물류 네트워크가 깨져서 어려움이 크다는 변수, 그런 게 위치 판단과 고수의 변수가 아니었을지?

[ 관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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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마산자유무역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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