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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테크 IS-91AF AM/FM 라디오 그리고 한국유니테크 주식회사

글쓴이 : SOONDORI

너무 잘 만들었다. 두 번 보고 세 번을 봐도… 과거의 시각으로 바라본 디자인과 컬러 조합은 So Cool~!

AM/FM, 폴리 바리콘 + IC, 1.5V 건전지 × 2, 1986년경.

(▲ 건전지 뚜껑이 사라져서 안타까운… 표제부 사진  포함 출처 : https://www.ebay.com/itm/174693435175)

“극 초박형 라디오(Das Super-Mini-Radio)”라는 수식어를 쓴, 유럽 Pocket Radio 브랜드 제품으로도 판매되었다.

(▲ 손으로 적은 21.3.86. 1986년 3월 21일로 간주. 이상 출처 : https://www.vatera.hu/pocket-radio-is-91af-am-fm-retro-radio-3216260426.html#opened)

* 관련 글 : 일본 Yamazaki Pera RP-223 라디오를 따라간 금성사 Focky Tocky 라디오

뒤돌아 보면 글로벌 시장 대응력이 상당히 높고 제품도 잘 만들었던 유니테크에 관한 정보는 별로 없었다. 정말 희한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관둘까 하다가 한 번 더 찾아보니, 빙고!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의 1988년 1월 21일 자 조선일보 3면 광고에 모든 게 다 담겨 있다.

(출처 :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88012100239103009&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8-01-21&officeId=00023&pageNo=3&printNo=20552&publishType=00010)

그동안 이런저런 글에서 통칭했던 ‘유니테크’의 정식 명칭은 1) 미국의 브랜드명 Unitech(회사명 유니-퍼시픽 주식회사, Uni-Pacific Corp.), 2) 국내의 ‘한국유니텍 주식회사’.

한국유니텍 주식회사(대표이사 김혁중)의 모집 공고문에 산업 디자인, 회로 설계, 기구 설계, 생산, 무역 등이 거론된다 함은 어떤 제품을 일괄 설계-생산-수출할 수 있는 단일 조직이라는 뜻이 된다.

특이하게도 생산 공장을 나라실업(주)로 지정하였는데, 위탁 생산을 했던 모양. 참고로 나라실업의 과거 위치는 현재 환경-벤처 타운으로 변신한 강서구 마곡지구. 개발 전 마곡지구는 논밭이었던 곳이니까 대충은 산골 자기에 나라실업 공장이 있었던 것이 되며…

조금 더 과거 기사를 찾고 더듬어 보면,

(출처 :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84031500239110012&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4-03-15&officeId=00023&pageNo=10&printNo=19367&publishType=00010)

기사의 핵심은,

1) 중앙대학교 약학대학 3년을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이윤길 씨가 역사의 장본인.
2) 전자시계를 미국에 수입하는 ‘YH 트레이딩’이라는 회사를 운영하다가 1979년에 미국의 유니텍을 설립하였다. 기사 제목으로 추론하건대 초기에는 교포 사회를 중심으로 판매 네트워크를 구축했던 모양이다. 이후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하는 전자 음향기기 및 전화기 판매 회사로 자리 메김.
3) 30대 사업가의 사업이 너무 잘 되어서 1983년에 국내에 한국유니텍 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고 한다.
4) 거래했던 국내 제작사는 삼성전자, 금성사, 한국유니텍, 세진음향, 세종전자, 기타(Audio Korea Electronics Co. Ltd, 1982~1983) 그리고 디자인은 일본 가토 디자인이 담당. (IS-91AF의 디자인이 특별한 것을 보면 Kato Design이 개입한 게 아닐까 싶음. 2023.07.27, 내용 수정. 일본 YSD 디자인의 시미즈 요시하루(Shimizu Yoshiharu) 씨의 디자인)

* 관련 글 : 일본 Yamazaki Pera RP-223 라디오를 따라간 금성사 Focky Tocky 라디오

(▲ ‘Unipacific Corp. 13327 Paxton Street Pacoima, California’에 해당하는 곳의 풍경. 미국의 물류 창고 규모 또는 제조형 중소기업 규모로는 작은 편이다. 수입 사무 중심의 공간이었던 듯)

* 관련 글 : Unitech CX-1214EQ와 삼성전자 PL-65L 카세트 라디오

설립이라면… 미국 유니테크의 단독 투자였을까?

1989년에 대표이사였던 김혁중 씨가 남해화학 대표이사 김용후 씨의 아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1) 미국 유니테크의 전액 출자 회사가 아니라 남해화학이 지분을 투자한 경우이거나, 2) 도중에 일정 부분 지분을 인수했던 회사로 추정한다. 엉성해보이는 나라실업 위탁 사례를 포함하면,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전자인 듯. 1989년 매일경제에 고시된 대차대조표 기준으로, 자본금 83백만 원, 자산 총계 32억 원, 부채 총계 26억 원, 당기 순이익 -3.9억 원.

6년간의 활동 결과로서는 그다지… 매우 다양한 제품들, 세계 여러 곳에서 접하게 되는 유니테크의 활동상에 비해 재무적 규모도 작은 편이 아닌지? 금성사 외 소싱 루트에 관한 One of Them이었을 가능성을 상상해보게 된다.

어쨌든 시작점은 알았다. 그러면 그 끝은?

유니테크 브랜드가 사라진 시점은 모호하다. 직전까지는 1990년대 제품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을 보고 1990년대 전체는 아닐 것이라고 추정했었는데… 1990년에 남해화학이 조흥은행 등의 대출관련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고 하고 명확하게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17일 한국유니텍이 부도를 내 세상을 시끄럽게 하더니 바로 다음 날에는 은마여행사가 무너졌다. 20일에는 상장회사인 대도상사마저 휘청, 파문을 일으켰다… (매일경제, 1990.09.24)”

자, 그렇다면… 미국 유니태크는 1979년에서 알 수 없는 1990년대의 어떤 시점까지, 한국유니테크 주식회사는 1983년에서 1990년까지 활동했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한국유니테크가 망했다고 곧바로 미국 유니테크 브랜드가 망하지는 않음. 그러나 치명적인 영향이 있었을 것. 아래와 같이 2003년에 Unitech 상호에 대한 미국 내 지적 재산권은 종료되었고 최소한 2000년대의 유니테크 제품을 본 적은 없다.

(출처 : https://alter.com/trademarks/unitech-73348375)

아무려나… 가끔씩 금성사의 활동, 백산전자의 활동과 겹치는 것 아닌가 하는, 다소 갸우뚱한 측면이 있었는데 이제야 시~원하게 해소됨.

[ 관련 글 ]
어떤 국산 빈티지 오디오, 유니테크
유니테크의 포터블 카세트 라디오들


○ (내용 추가) 한국유니텍은 김혁중 씨 가족이 사업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미국 유니테크와 사업적으로 연합한 경우. 즉, 나라실업은 한국유니텍 주식회사의 모태였다.

`남해화학 파문’부른 한국유니텍 (한겨레, 1990.09.18, https://www.hani.co.kr/arti/legacy/legacy_general/L492805.html)

#김혁중씨 87년 인수한 오디오 전문업체/공장화재로 파산. 부도총액 1백억 추산. 혁중(35) 씨가 운영하다 도산한 한국유니텍은 오디오와 휴대용 카셋 레코더를 생산해온 중소기업이다. 83년 5월 서울 강서구 공항동에서 `나라실업’이란 이름으로 설립돼 대우전자 등에 음향기기 부품을 납품해오다 87년에는 5백만 달러 상당의 카셋 라디오를 수출하기도 했다. 이 회사(=한국유니텍)를 김혁중 씨가 인수한 것은 87년말이다. 한국 외국어대를 졸업하고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연수를 마친 김 씨는당시 자본금 1억 원에 10억 원 가량의 부채를 갖고 있던 이 회사를 인수한 뒤 자본금을 10억 원으로 늘리고 이름도 `한국유니텍’으로 바꿨다.

○ 모든 것을 종합하면, 나라실업의 원 소유자는 이윤길 씨였고 그것이 일종의 공기업인 남해화학을 경영하던 부친 김용휴, 장남 김혁중에게 넘어갔던 것. 비료를 만드는 남해화학은 1974년 정부 주도로 설립되었고 현재는 농협이 소유 중이다.

유니테크 로고와 이름을 그대로 쓴 것을 보면 브랜드 네임의 사용 계약이 포함되었을 것. 아무튼, 그 시점의 유니테크 사업은 시원치 않았던 모양이고… 특히,  해외 영업 및 해외 판매에 강점이 있는 미국 유니테크가 사업 리딩을 하지 않는다면 국내 제조 공장이 살아남기 어려운 수직형 구조에서… 결과론적으로 의도된 <비 가치 자산 떨이>의 냄새가 난다. Unitech의 브랜드 가치에, 해외 영업 지원 등 가치를 포함하지 않았다면 김형중 씨 가족이 부실한 나라실업을 인수했을까? NO!

김 사장 부자 사실상 “무일푼”/남해화학사 건 수사 뒷얘기. (중앙일보, 1990.09.19,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97500)

“…김 사장과 혁중씨는 이미 아파트 등 부동산이 모두 은행담보로 들어가 있어 무일푼이더라고 수사 관계자들이 전언. 이와 함께 김 사장 부자는 88년 12월 재미교포로부터 한국유니텍을 인수할 때부터 이미 몰락의 길에 들어선 것 같다는 것이 수사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 혁중씨는 당시 은행부채ㆍ리스자금 등 20억 원 정도의 악성 부채를 갖고 있던 이 회사를 채무 인수조건으로 2억 5천만 원에 인수해… 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던 중 설상가상격으로 3월 19일 공장에 불이 나 4개월 동안 휴업하는 바람에 2백여 명의 종업원 인건비 등 경상비 15억 원 손실을 그대로 뒤집어쓴 것으로…”

○ 1982년에 첫 FCC ID를 발급받았고 1983년까지 거래했던 Audio Korea Electronics Co. Ltd와 미국 유니테크의 연결 고리. 오디오코리아전자 주식회사는 어디? 아무튼, 국제 무역 및 유통 사업자의 속성 그대로, 대기업에서 중소기업까지… 국내 소싱 루트가 참으로 다양했다.

(출처 : https://fccid.io/BSK8YK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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