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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thkit IG-5240 TV 테스트 패턴 발생기와 동네 전파사

글쓴이 : SOONDORI

CRT 사용 아날로그 TV의 화면 캘리브레이션용 포터블 장치. 내셔널 세미컨덕터社가 ‘Color Bar Generator’로 정의한 MM-5322 패턴 발생기 IC와 크리스털 제어 RF 회로를 결합한 DIY KIT 제품이다.

총 16개 NTSC 패턴 생성, VHF 67.250Mhz 채널 4 RF 출력(크리스털 교체에 의한 채널 3 변경은 옵션) 9V 건전지 × 2, 1970년대 추정.

(▲ 1100, 0101… 4개 스위치 조합으로 패턴을 선택한다. 표제부 사진 포함 출처 : https://www.ebay.com/itm/175447118537)

(출처 및 정보 열람 : www.youtube.com/watch?v=-4pCXfrGBcA)

아래는 핵심 칩인 MM-5322의 데이터 시트에 담긴 표준 회로.

반도체 분야는 KIT 분야에 비할 바 아니게 자금이 많이 들어가는데, National Seminconductor社는 왜 이런 특수 칩을 생산했을까?

그만큼 1960년대 이후의 미국에서 필드 서비스 수요가 많았다는 뜻, 그만큼 아날로그 컬러 TV 또는 그 이전의 흑백 TV가 널리 보급되었다는 뜻이다. 눈만 끔뻑끔뻑하며 지내다가 2차 세계대전 승전을 계기로 자신들의 생산과 소비의 역량을 알아버린 그 나라에서.

10여 년쯤 뒤처진 대한민국에서는,

지붕 위 다소자 안테나를 만지러 올라갔다가 가끔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고… 진공관 TV가 너무 무거워서 서비스맨이 집을 방문해야 했던 1970년대의 초기 보급기를 지나서 고장 난 것 들고 찾아가거나 아주 가끔은 친히 테스타~ 도라이~바 등 뭔가를 들고 찾아오시는 동네 전파사(*)의 전성시대가 찾아온다.

* 일본식 작명의 차용인지는 모르지만, ‘전파’를 쓴 것은 그 시절을 리딩하는 High Technology 키워드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전파를 이용하는 TV와 라디오를 빼면 전자 세상에서 딱히 남는 게 없음. 오디오는 먼 훗날의 이야기.

가난한 나라의 그분들에게 초저가 엔트리급 장비인 Heathkit IG-5240은 꿈의 장비가 아니었을까 싶고… 아무튼 그리하여 CRT TV용 패턴 발생기는 대부분 핸드백 같은 가방이 함께 제공되는 포터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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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생각하기로, 국가기록원은 정말 멋진 조직이다. 대한 늬우스가 없었다면 어찌 과거를…

“…1954년 TV 수상기 1대가 보신각 앞에 설치돼 일반에 첫선을 보인 지 2년이 지난 1956년 5월, ‘활동사진이 붙은 라디오’라는 별명을 가진 TV 방송이 시작됐다. 1956년 5월 12일 탑골공원, 서울역 등지에 인파가 몰렸다. 이날 첫 전파를 탄 우리나라 첫 TV 방송국 코캐드 티브이(KORCAD*-TV)의 방송을 보기 위함이었다.

당시엔 TV 수상기가 일반에 보급되지 않아 서울 시내 주요 공공장소에 TV 수상기를 설치해 방송을 송출했다. 그 이후로도 한동안 이들 장소에서는 매일 저녁 TV 방송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6.25 전쟁 후 중앙방송국(KBS) 라디오 복구를 위해 RCA 한국대리점 책임자(황태영)는 미국 RCA사의 기자재 도입을 알선했다. 이 거래수수료 대신 대량의 TV를 들여와 설립한 것이 KORCAD-TV다. 이렇게 개국한 KORCAD-TV는 우리나라 최초의 TV 방송국이었지만 시험성격이 강했는데, 1961년 국영 TV(KBS)에 ’채널 9‘를 넘겨주면서 방송역사에서 사라졌다.
* KORCAD : Korea RCA Distributor (한국 RCA 배급회사)

1960~1970년대에는 국(공)·민영 TV 방송국이 서울과 지방에 속속 개국하면서 TV 방송이 전국적인 방송망을 구축해 갔다. 1961년 12월 국영 서울텔레비전방송국(KBS, ‘70년 공영으로 개편)이 개국하면서 본격적인 TV 방송이 시작됐다. 곧이어 민영방송인 동양방송(TBC, ’64.12.), 문화방송(MBC, ’69.8.)이 차례로 문을 열면서방송사간 시청률 경쟁이 뜨거워졌다. 또한, MBC가 부산, 대구(영남TV), 광주(호남TV)에, KBS가 부산 등에 지역 방송국을 개국해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해 나갔다. TV 방송국 개국으로 라디오를 통해 귀로 듣던 스포츠 중계와 드라마를 눈으로 보게 되면서 TV에 대한 국민들의 갈망이 커져갔다. 당시엔 TV 수상기를 대한방송문화협회가 보급했는데, TV 수상기가 워낙 귀하던 시절이어서 월부계약 신청을 받는 날에는 사람들이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1962년 사진) 그나마 운이 좋아야 구할 수 있었던 당시의 풍경이 지금으로서는 낯설기 그지없다.

1980년대 이후 전면 컬러TV 방송이 실시되고, 다채널·뉴미디어 시대로 진입하면서 TV 방송은 대중매체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 1980년 정부의 언론 통폐합 정책으로 동양방송이 KBS에 통합되고, MBC의 주식 상당분을 KBS가 인수함으로써, KBS 중심의 공영방송체제로 재정비됐다.

1981년 TV 수상기 보급이 80%를 넘어서고 컬러TV 방송이 전면 실시되면서 TV는 안방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컬러TV 방송으로 프로그램은 다양해지고, 화려한 쇼·오락 프로그램의 비중이 늘어나 시청자들을 브라운관 앞으로 끌어들였다. 또한, 교육방송(‘81.2.), 서울방송(SBS, ’91.3.), 케이블TV(‘95.1.), K-TV(‘95.7.), 아리랑TV(’99.6.) 등이 등장하면서 다채널·뉴미디어시대로 본격 돌입하게 됐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 ’15년 5월「이달의 기록」TV 방송사(史), 2015.05.10, https://www.mois.go.kr/frt/bbs/type010/commonSelectBoardArticle.do?bbsId=BBSMSTR_000000000008&nttId=45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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