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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표 권총 인두와 빈티지 아날로그 웰러

글쓴이 : SOONDORI

1970년대의 어떤 날이었을까? 1호선 전철을 타고 샛말 청계천 상가에서 구입. 기억하기로는, 어설프고 투박한 깜장 플라스틱 + 이건 뭐지? 삐죽 튀어나온 쇠젓가락 + 약간 삐딱하게 꽂혀 있던 꼬마전구 + 무겁다 + 뜨겁다 + 그래도 남들은 없으니까 내 것만 장땡 + 지속된 약간의 흥분감.

가만 놔두었다면 그런 것도 다 인생의 보물이 되는데…

그나저나 미국 웰러(Weller*)가 여전히 그런 기억 속의 깜장색 권총 인두를 만들고 있다는 게 신기한 일이다.

* 1945년, 권총형 인두를 유행시킨 Carl E. Weller가 미국에 설립한 회사. 1970년 공구 유통업체인 미국 Cooper Hand Tools에 흡수되었으되 Weller 브랜드는 그대로 유지.

뭐… 청계천 표 제품의 원형 모델이었을 듯. 그리고 권총 인두보다 훨씬 더 진일보한 웰러의 아날로그 타입 솔더링 스테이션은 이제 완벽한 빈티지가 되었는데…

그들도 이제는 디지털 타입만 만든다. 신품으로 나오는 미제 Simpson 아날로그 멀티미터나 여전히 고색창연한 미제 맥킨토시 오디오처럼, 빈티지 향수로 소비자 지갑을 열게 만드는 깜장 권총인두만큼의 감성적 가치는 없다고 판단했는가 보다.

이쯤에서, “아날로그는 저렴한 것”이라는 등식이 사람들 머릿속에 각인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보게 됨.

흔히 디지털 튜너는 아날로그 튜너보다 비싸고, 미니급 시스템에 붙은 아날로그 튜너는 디지털 튜너보다 싸고, 못 생기고 허접하고, 이렇든 저렇든 만듦새가 확연히 다르고…

어떤 시절에 디지털이 새로운 세상을 여는 신의 열쇠처럼 보였고 그것이 돈벌이에 맞물려 오랜 시간 동안 어떤 관성을 만들어낸 것?

사실, 인간 감성과 육체 반응에 더 잘 부합하는 것은 아날로그이다. 권총 인두는 방아쇠를 누르면 그만이고, 아날로그 웰러는 온도 조절 Knob을 휙~! 돌리면 그만인데, 디지털 웰러는 뭘 누르고 뭘 누르고 또 뭘 누르고 그런 다음에 Up하고 Down하고… 그런 것을 메모리 버튼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해도 모든 상황을 다 커버할 수는 없음.

“아날로그는 합리적인 것이지 결코 저렴하지 않다”

그런 착안에, 다음에는 사물이 인간을 바라보는 ‘브리온베가적 디자인’이 적용된 구닥다리 Weller WES50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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