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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yback Machine] ’94 Nissan Fairlady – Nissan 300ZX

by TIMO

2004.02.15

우연한 기회에 무척이나 좋아하는 90년대 초반형 300ZX를 시승해 보았습니다.

대략 10년이 넘어 버린, 별 관심을 끌지 못할 낡은 모델을 한 번 몰아 보았다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이 바보스럽게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엊그제 나온 최신형 모델이 10년, 20년 전 모델 보다 모든 면에서 낫다는 보장은 없는 것이고 개인마다 어떤 모델의 세대별 평가ㆍ선호의 기준이 다를 수 있음을 감안하면, 이런 때 늦은 시승기가 역사성을 갖는 Nissan 300ZX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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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에 조향 핸들이 있는 오래된 일본 오리지널 모델. 어느 날 본래의 주인이 차를 팔았고 일본의 경매장을 통해 수입된 후 국내에서도 몇 차례 주인이 바뀐 다음 아주 우연하게 제 눈앞에 서 있게 된 그간의 이력을 생각하면… 자동차의 탄생과 폐기라는 것도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인생 유전과 크게 다를 것이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주 잠깐 동안이지만 눈 딱 감고 이 차를 사서 편안하게 관리해 주고 싶다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대략 1천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평균적인 매매가와 구입 후의 관리 비용을 생각하면 당장의 제 현실에서는 꿈같은 일입니다.

1. 외부 디자인

이 모델에서 개인적으로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은, 군더더기 없는 바디 라인과 전면부 램프 구성입니다. 이 앞쪽의 인상이라는 것은, 어찌 형용을 할까 싶은 생각이 들 만큼 매우 특별합니다. 그리고 정면이든 측면이든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정제감을 느낄 만큼 잘 다듬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워낙에 각진 디자인을 좋아하는 개인적인 성향 탓인지도 모르겠고 부분 부분의 직사각형들이 너무나 잘 어우러져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최근 유행하는 둥글둥글한 디자인들이 딱 질색일 것입니다. 돈이 넘칠 만큼 있다고 해도 살 만한 차가 없더라 라는 식의 심리적 회피까지도…

뒷 램프들의 구성 또한 일품입니다. 빨간색과 노란색의 조화 그리고 그 색들을 둘러싸고 있는 직사각형의 검정 테두리는 강렬한 자극제와 같습니다. 이러한 디자인은 9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것으로서 좌ㆍ우 컴비네이션 램프를 한 덩어리로 연결하고 암적색 톤으로 처리하여 뒷 부분이 마치 하늘을 날아오르는 비행선의 분사구와 같은 느낌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국산 차에도 이런 디자인이 많았습니다. 소나타, 엘란트라, 브로엄, 에스페로 등등

아무튼, 페어레이디를 볼 때마다 ‘달릴 준비가 되어 있는 차’라는 생각을 늘 하게 되고 동력ㆍ제동ㆍ선회성능 등 물리적인 비교평가가 어떻든 디자인에 있어서는, 벤치-마킹 대상이었고 경쟁모델일 포르쉐를 능가하는 정제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동그라미와 직사각형. 그 감각적인 느낌의 차이 그런 것 때문일까? 아니면 지극히 개인적인 성향이나 편견 때문일까? 그것이 궁금합니다.

2. 인테리어

2인승입니다. 그리고 그저 평범한 퍼포먼스 모델의 그렇고 그런 인테리어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뒷편 C-필러(Pillar) 때문에 다가 오는 차를 쉽게 확인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타의 어색한 느낌들. 이런 것들은 운전석 좌ㆍ우가 바뀐 때문이고 우핸들 차량을 구입한 상황에서라면 당연하게 감내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주차장이나 톨-게이트를 이용할 때의 불편함과 기타.

운전석 버킷형 시트는 착 달라붙고 대단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라고 기대했습니다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제 체형(180cm에 90Kg 이상)과 시트가 안 맞았던 탓이 아닐까 싶고… 어쩌면 일본인들의 체형에 맞춰진 모델이기에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은, 제가 워낙에 펑퍼짐하게 자리를 잡는 스타일이랍니다.

잘 나간다는 차들의 실제 사이즈는 생각보다 훨씬 작고 높이 또한 매우 낮습니다. 엔진 출력 손실과 승차정원을 생각하면 불필요하게 전후 간 거리가 길어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고 동적 안정성을 염두에 두었다면 깡똥하게 키가 클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 소나타 정도의 부드러운 탑승 자세, 머리와 천장의 공간확보 등을 기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결국 제 체형 탓이려니 하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덮어 둡니다.

이제까지 몰아본 대부분의 구형 닛산 차량들과 흡사한 형태의 계기판입니다. 오일압력 게이지가 있는 것이 특이하고 최대 속도가 180km/h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과연 딱 그만큼만 나갈 수 있는 것일까? 이것은 상상하기 나름일 듯.

계기판 좌우 측에 있는 대칭형 스위치 패널은 특이합니다. Nissan Quest Van에서 볼 수 있는 식의, 앞쪽으로 약간 튀어 나와 대칭형 정렬되어 있는 컨트롤 장치 구성은 옛적 닛산만의 독특한 디자인 패턴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몇 모델에서 보았기 때문. 기능적으로는 별다른 것이 없습니다만, 기분상 그럴듯해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마치 항공기를 조작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함이라는… 너무 엉뚱한 추론일까요?

3. 엔진ㆍ제동 계통

후륜구동에 세로 배치형 엔진을 사용하고 있으니 당연히 아래 사진과 같은 모습일 수밖에 없습니다. Dual Throttle을 사용하여 응답성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즉 좌ㆍ우 Cylinder Bank와 흡입계통이 각각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고 페어레이디가 퍼포먼스 모델을 지향하고 있음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10살이 다 된 차량의 하체는 기대 이상으로 깨끗한 편입니다. 잡음도 거의 없답니다. 차가 좋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1~2년쯤 전에 수입이 되었다고 하면 일본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부식 발생이 비교적 덜 한 조건에서 운행되었기 때문일 것이고… 디퍼랜셜에 냉각핀을 가공한 것은 이런 류의 모델에서는 너무 흔한 것. 그런 용도의 냉각핀은 브레이크 캘리퍼에도 있습니다. 잘 달리기 위한 모델이고 그만큼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며 그 때문에 발열이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암시하는 단서가 아닐까요?

4. 낡은 차가 새 차처럼 느껴질 때

배출가스의 냄새, 손으로 느낄 수 있는 맥동 그리고 엔진소음 세 가지만으로도 엔진상태가 매우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적어도 이런 감각적인 느낌들은 판단들은 “일본 차, 일본 엔진이 좋기는 좋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대략 20만 킬로를 뛴 닛산차가 1년생 국산차와 비슷한 수준의 엔진소음을 낸다고 하는 정도의 비유가 가능할 듯. 그럼에도 90년대 초반에 국내 기업들이 이런 차와 이런 엔진을 만들지 못했음에 반발 감정을 드러낼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2000년을 넘어선 현재까지도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은 하나의 발전과정을 거치는 중입니다.

ⓐ 배출가스, 맥동 ⓑ 화이버 후드(너무 가볍다) ⓒ 하체쪽의 보호도장처리

그렇지요? 언젠가는 이런 모델을 넘어서는 국산 모델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비교군에 속하는 투스카니는 앞으로 10년쯤 더 있어야 그 결과를 알 수 있을 듯.

5. 드라이브

언급된 바와 같이 좌우에 사각이 많습니다. 도로조건과 조향핸들의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 그외에는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운행에 별문제가 없습니다. 숙련된 운전자의 경우는 10~20분, 비숙련자의 경우에도 1시간 정도면 쉽사리 우측 핸들에 적응할 수 있다고 합니다.

가속 반응이 약간 더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만, 이것은 그간의 자동변속기 관리상태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니 판단을 유보하겠습니다. U-Turn 코스에서 약간 과격한 급가속 핸들링을 해 보았는데 자세의 흐트러짐 없이 곧바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고 감속 시에는 마치 수동변속기를 쓰는 듯 변속기 내부감속이 일어나는 그 느낌이 좋았습니다. 태생이 퍼포먼스 모델이니 10년이 지난 후에도 잘 나가고 잘 제어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6. 확! 사버릴까?

대략 1천몇백만 원쯤 하는 이런 류의 수입차를 살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답은,

ⓐ 멋 부리기 위한 용도가 아니고 ⓑ 그동안 순수하게 나름대로 이름있고 소유가치가 있는 퍼포먼스 모델을 갖고 싶었고 ⓒ 당장의 출퇴근 용도보다는 드라이빙을 위해 사용할 것이며 ⓓ 최소 수 배 이상의 유지비용(초기 구입비가 생각보다 저렴한 이유이기도 함)을 감당할 수 있고 ⓔ 천장부지 기름값에 대한 부담을 무시할 수 있고 ⓕ 간혹 부품 조달(국내에 조달 루트가 있음)에 1주일 이상이 소요되어도 큰 문제가 아니라면, ⓖ 아니면 비행기 타고 두 시간쯤 날아가서 가져오지 라는 낙천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며 ⓗ 부가적으로 결혼해서 아이들이 없는 경우이며 ⓘ 아이들이 있다고 해도 세컨드-카를 장만할 정도의 재정적 여건이라면? 살 만하다는 것입니다. 특별한 것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감내해야 하는 약간의 고통은 있을 수도 있겠지만, 페어레이디는 그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모델입니다.

가만 생각하면, 세월이 흐르면서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차들이 있습니다. 믿어 의심치 않는 바로, 닛산 페어레이디는 그런 차들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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